▣ 예산/서산 일락산<512.0M>~가야산<678.0M>
★ 산행코스 : 개심사 일주문 ~ 개심사 ~ 전망대1 ~ 전망대2 ~ 일락산 ~ 석문봉 ~ 가야산 ~ 상가저수지 ~ 남연군묘 ~
덕산도립공원 상가리 주차장
★ 일 자 : 2016년 9월 4일 (일요일)
★ 누구랑 : 나홀로 (드림산악회 따라)
★ 이동시간 : 5군수사령부 출발(06:40) ~ 성서(07:30) ~ 지정체<금호분기점까지> ~ 경부고속도로 ~
김천휴게소(08:20-08:40) ~ 당진영덕고속도로 ~ 예산휴게소(10분) ~ 서해안고속도로 ~ 서산TG ~
개심사 입구도착(11:05)
★ 날 씨 : 맑고 가끔 구름 ★ 기 온 : 24도 ~ 28도
★ 산행조건 : 맑고 가끔구름 / 더운날씨 - 바람 없고 습도높음 / 조망 나쁨
★ 산행시간 : 4시간 40분 (11:10~15:50)
* 개심사주차장 출발(11:07) ~ 일주문(11:08) ~ 이정표(11:13)/개심사0.3k/일락사3.72k ~ 개심사(11:17-11:23) ~
좌측 해우소방향 들머리 진행 ~ 이정표/백암사지3.86k/개심사0.06k ~ 옛절터(11:32) ~
이정표(11:42)/백암사지3.86k/개심사0.06k ~ 전망대1(11:44) ~ 아라에길.이정표(11:45)/개심사0.4k/전망대0.3k ~
이정표(11:51)/개심사입구0.3k/전망대0.1k/보원사지2.0k/용현자연휴양림2.7k ~ 전망대2(11:54) ~ BACK
※ 일락산은 이정표상 용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며 곡 다시 이정표가 나옴. ~ 넓은 임도길 ~
차단기있는 임도삼거리(11:59)//이정표/개심사입구0.4k/용현자연휴양림2.6k/마애여래삼존상3.6k ~
이정표(11:59)/일락산1.6k/보원사지터2.6k ~ 임도.산길 갈림길///이정표(12:01)/일락산1.2k/보원사지터2.8k ~
일락산 521M(12:28)///석문봉/용현계곡.개심사 ~ 헬기장(12:46)/솟대와항아리/山바위시 ※우측 포장도로 있음 ~
임도차단기.우측 산길진입(12:48)///이정표/일락산/용현계곡/주차장 ~ 명품소나무(12:51)조망점 ~
우측 암릉진행 ~ 사잇고개(13:12)///이정표/주차장3.2k/옥양봉1.33k/가야봉1.48k/일락사2.74k ~
석문봉 653M(13:13-13:50)돌탑//점심식사 ~ 소원바위(14:11) ~ 거북바위(14:18) ~
우측 암릉진행/상승로프/암릉/하강수직로프(14:28) ~ 이정표(14:34)/석문봉1.18k/주차장3.06k/가야봉0.03k ~
가야산 678M(14:44-14:49)//중계소///이정표/주차장3.59k/헬기장0.98k/석문봉1.48k ~
삼거리(14:55)///이정표/중계소0.30k/주차장3.52k/헬기장0.91k/가야봉0.07k ※중계소 방향이 헬기장~원효봉가는 능선길
삼거리(15:12)//이정표/가야봉1.13k/주차장2.46k/헬기장0.78k ~ 상가저수지뚝(15:26)
※ 좌측 남연군묘 방향 진행/이정표 있음 ~
뚝건너 우측진행///이정표(15:30)/주차장1.15k/석문봉2.36k/가야봉2.44k/헬기장2.09k ~ 남은들상여 /급수시설 ~
남연군묘 상단(15:55) ~ 공원길따라 내려감 ~ 도로접(15:46)한후 우측방향 진행 ~ 덕산도립공원 상가리 주차장(15:50)
///// 하산완료 /////
● 주변 문화유적지 : 가야사. 상가리미륵불, 보덕사
★ 귀가코스 : 덕산도립공원<덕산면 상가리>주차장 출발(16:15) ~ 황간휴게소(10분) ~ 성서 도착(19:11) ~
지하철(19:15) ~ 집도착(19:55)
★ 도상거리 : 11.79 Km + 남연구묘
*. 개심사 일주문 ~ 개심사 ~ 전망대1 ~ 전망대2 ~ 일락산 ......................... 3.5 Km
*. 일락산 ~ 석문봉 ~ 가야산 ............................................................... 4.7 Km
*. 가야산 ~ 상가저수지 ~ 남연군묘 ~ 덕산도립공원 상가리 주차장 ............... 3.59 Km + 남연군묘
★ 산행속도 : 중
★ 기 타
(1) 개심사에서 일락산 들머리는 좌측으로 해우소방향에 등산로 표지판이 있음.
확연한 등산로를 따라가면 몇군데 아라에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으며 이정표에 표시된 백암사지 방향으로 진행하면
전망대1 나롬. 중간에 지름길도 한군데 있음.
(2) 전망대1에서 넓은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가면 다시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으로 전망대2가 나옴.
전망대2는 보고 돌아나와야 함. (이정표/개심사입구0.3k/전망대0.1k/보원사지2.0k/용현자연휴양림2.7k)
※ 일락산은 이정표상 용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며 곡 다시 이정표가 나옴
전망대서 돌아 내려오면 금방 차단기가 있는 삼거리(이정표①/개심사입구0.4k/용현자연휴양림2.6k/마애여래삼존상3.6k)
이정표②(일락산1.6k/보원사지터2.6k) 나오는데서 직진하면 됨.
임도를 2분여 더 진행하면 이정표(일락산1.2k/보원사지터2.8k/황락리)에서 일락산방향 산길로 들어감.
(3) 일락산은 정상석이 없으며 이정목과 평상이 있음.
개인적인 생각으로 개심사에서 일락산 코스는 개심사에서 내포문화숲길을 따라 일락사를 거쳐 일락사에서 일락산으로
올라오는게 더 좋을듯 함. 개심사~일락산 코스는 볼게 없고 일부구간 임도를 걸어야 함.
내포문화숲길은 숲길을 걷고 일락사를 볼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개심사~일락사구간 내포문화숲길 거리는 4.02Km 임>
(4) 일락산에서 내려와 17여분 진행하면 헬기장(솟대와항아리/시<山>가 새겨진 바위)이 나옴.
※ 헬기장 우측으로 포장도로(일락사방향)가 있고 10시방향에는 차단기 있는 임도이며 이곳이 지도상 사잇고개인것 같음.
진행 등산로는 1시방향 산길(이정표/일락산/용현계곡/주차장)로 진입하면 됨. 잠시후 명품소나무와 조망점이 나옴.
(5) 서서히 암릉과, 석문봉~가야산 및 송신탑이 보임. 이곳부터는 좌.우 암릉과 조망점을 찾아 들락거려도 좋음.
주능선이 가장 잘보이는 우측 암릉은 진행해도 무난함. 암릉이 짧고 위험하지 않음.
(6) 석문봉에는 정상석과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음. 산행중 가장 조망이 좋은곳임.
석문봉을 출발하여 가야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소원바위와 거북바위를 지나고 잠시후 우측으로 산행중 가장 스릴있는 암릉
지대가 나오는데 상승로프와 하강수직로프가 설치되어 조심하면 지나올수 있음. 물론 암릉지대 좌측으로 쉬운길이 있음.
(7) 석문봉에서 가야산까지는 1시간안밖 정도 소요되며 이정표와 지도에 있는 거리가 상이함.
(8) 가야산정상은 중계소가 차지하고 있고 정상석은 전망대가 설치된 데크위에 있음.
정상에서 내려오면 바로 삼거리(이정표/중계소0.30k/주차장3.52k/헬기장0.91k/가야봉0.07k)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주차장으로 하산할수 잇음. ※중계소 방향으로 올라가면 헬기장~원효봉가는 능선길이 됨.
하산길 20분 정도는 경사가 심하고 잔돌이 많아 조심스레 내려와야 함.
(9) 급경사지를 내려오면 다시 삼거리(이정표/가야봉1.13k/주차장2.46k/헬기장0.78k)가 나옴.
이후에는 편하고 넓은 경운기이 나오고 상가저수지를 만남.
상가저수지 뚝<하단> 지점(이정표)에서 남연군묘 방향은 3시방향으로 뚝을 횡단해 가야 함. 직진은 주차장 방향
(10) 뚝을 건너 우측으로 진행(이정표/주차장1.15k/석문봉2.36k/가야봉2.44k/헬기장2.09k)하면 잠시후 남은들상여가
보존된 집이 나오고 화장실과 급수시설이 있음.
(11) 남연군묘는 좌측으로 올라가면 됨. 남연군묘와 주변을 탐방하고 공원길따라 내려가면 도로를 접한후 우측방향으로
내려가면 아주 큰 덕산도립공원 상가리 주차장이 나옴. 공원정면에 매점겸 식당이 있음.
[남연군묘에 대한 내용]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높은 언덕에 반구형 봉분이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 석물과 비석이 서 있다.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것을 1846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이하응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아버지인 남연군의 무덤 자리를 찾기 위하여 지사(地師)인 정만인(鄭萬仁)에게 부탁하였다.
지사는 전국을 두루 살펴보고 이곳을 ‘두 대에 걸쳐 천자가 나는 자리[二代天子之地]’라고 지목하였다.
이곳에는 본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묘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으나, 대원군에 의해 폐사되고 남연군의 무덤이 옮겨졌다.
이장한 7년 후 차남 명복(命福)을 낳았다. 철종이 후사 없이 돌아가자 종손이었던 명복이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 뒤 1866년(고종 3) 통상을 요구하다가 실패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E.J.)가 미국인 젠킨스(Jenkins,F.)를 자본주로, 프랑스 선교사 훼론(Feron)을 통역관으로 삼아 백인 8명, 말레이지아인 20명 등 약 100여 명의 중국인 청년을 무장시켜 4월 18일 홍주에 정박하고 고덕으로 들어왔다.
러시아 병사라고 칭하고 남연군의 무덤을 훼손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양이(洋夷: 서양 오랑캐)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더욱 엄히 하였다. 이 무덤을 파헤친 사건은 국내외로 커다란 비난을 받았다.
무덤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기와가 많이 나오고, 또 탑을 파괴할 때 백자 2개와 단차(團茶) 2덩이, 사리도 3개가 나왔다고 이건창(李建昌)은 적고 있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 프랑스는 자국인 신부의 처형을 구실로 중국에 있던 함대를 보내 조선을 침략하였다. 1866년 로즈는 프랑스 극동 함대를 이끌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지형을 살피고 물러갔으나, 같은 해 다시 7척의 군함을 이끌고 와 강화부를 점령하였다.
이에 한성근의 부대가 서울로 진격하려는 프랑스군을 문수산성에서 물리치고 양헌수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결사적으로 항전하자, 프랑스군은 약 1개월 만에 철수하였다(병인양요, 1866). 이때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서적과 보물을 약탈하였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도 심해졌다.
한편,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통상 요구를 강화하기 위해 충남 덕산에 있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1868). 이 사건은 흥선 대원군을 크게 자극하여 서양 세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